Running with Stories

모든 발걸음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달리고,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들을 기억합니다. 러너스로그는 그런 발걸음의 이야기를 함께 써내려가는 공간입니다.

『달리는 마음, 철학하는 몸』

전체 글 9

30분, 10킬로미터, 그리고 1시간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나의 목표는 단순했다.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는 것. 그 시간은 짧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당시의 나에겐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벅찬 도전이었다. 몇 분만 달려도 호흡은 금세 가빠지고, 다리는 무거워졌으며, 마음 깊은 곳에선 "여기서 멈춰도 되지 않을까?"라는 속삭임이 올라왔다. 그 30분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의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끝까지 달렸다는 사실은,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잠시라도 넘어서 보았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 작고 조용한 승리는 내 안의 어떤 가능성을 처음으로 비추는 불빛이 되었다. 두 달의 노력 끝에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된 나는, 이번에는 조금 더 멀리 나아가 보기로 했다. 10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리는 것. 이번에는 시간보다 거리..

파틀렉 훈련이란?

파틀렉은 스웨덴어로 속도의 놀이를 뜻한다. 말 그대로 속도를 가지고 놀듯 자유롭게 변화를 주며 달리는 훈련이다.1930년대 스웨덴 코치 귄나르 홀머가 고안한 이 방식은, 고정된 거리나 시간 없이 자유롭게 속도와 강도를 조절하는 것이 특징이다.고강도 구간과 회복 구간을 반복한다는 점에서는 인터벌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자유롭고 직관적인 방식이다. 파틀렉과 인터벌 훈련의 차이 인터벌은 미리 정해진 거리나 시간에 맞춰 일정하게 반복한다. 예를 들어 400m를 빠르게 달리고, 200m는 천천히 조깅하는 식이다.파틀렉은 이런 구간이 딱 정해져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앞에 보이는 전봇대 두 개까지는 빠르게, 다음 전봇대 하나까지는 천천히 뛰는 식이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나 즉흥적인 기준에 따라 속도와 강도를 자유롭..

은유로서의 마라톤

사람들은 종종 마라톤을 은유로 사용한다. 누군가는 인생이 마라톤 같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사랑을, 관계를, 성장의 여정을 그렇게 부른다. 마라톤이란 무엇이기에, 우리는 그 이름으로 삶을 설명하려 하는 걸까? 마라톤은 단지 42.195km라는 거리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그건 한 인간이 끝까지 가보겠다는 마음의 형식이며, 무너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려는 존재의 방식이다. 마라톤에는 출발선이 있고, 결승선도 있고, 설렘이 있고, 설렘을 능가하는 두려움도 있고, 중도 포기도 있고, 걷다가 다시 뛰는 선택도 있다. 마지막 몇 km를 남겨두고 멈춰야만 하는 순간도 있다. 그 모든 순간은 마라톤이기도 하고, 동시에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마라톤은 여러 면에서 삶을 닮은 극장이다. 누군가는 주체할 수 없는 젊음처..

홍성 새벽 달리기 – 전환으로서의 쉼

홍성, 일요일 새벽. 잠은 푹 잤다. 몸이 가볍다. 피곤함은 없지만, 이불 속은 여전히 편안하고 유혹적이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정겹다 못해 조금은 시끄럽기까지 하다. 이불 밖으로 나가자고 재촉하는 나와, 아직은 조금 더 이 안에서 머물고 싶다는 내가 잠시 대화를 나눈다. ‘노래 한 곡만 듣고 나가자.’ 그렇게 타협했지만, 결국 세 곡을 듣고서야 운동화를 신는다. 일요일 새벽의 달리기. 이건 한 주를 마무리하는 달리기일까, 아니면 또 다른 한 주를 준비하는 달리기일까. 그건 매번 달라진다. 가열차게 달려온 한 주의 끝에서는 마무리의 달리기가 되고, 조금 막막한 새로운 한 주를 앞두고 있을 때는 준비의 달리기가 된다. 삶의 리듬이 달리기를 규정하는 것이다. 어쩌면 둘 다 맞는지도 모르겠다. 마무리이..

Running Route [길] 2025.06.08

마라톤 풀코스를 향하는 마음

처음엔 잘 몰랐다. 다만,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막연한 마음뿐이었다. 운동 부족, 체중 증가, 체력 저하, 스트레스, 건강 악화… 몸이 무거워지고, 마음도 무거워질 즈음, 나는 달리기를 만났다. 조금은 억지로 시작했고, 뛰기만 하면 숨이 차고, 땀이 나고, 근육통으로 금방 멈춰 서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처음의 10분이, 그리고 조금 더 지나 도달한 5km가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땠어? 이제 좀 괜찮지 않아?”“조금 뛰다 보니 할 만하지? 조금 더 가볼래?”“힘들었지만, 뛰길 잘했지?” 달리기는 그렇게 조금씩 나를 바꿔갔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처음엔 건강 때문이었다. 그러다 습관이 되었고, 어느새 삶의 리듬이 되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을 위해 뛰는 날이 늘어났다. 일상이 무너질..

"지금 당장 달릴 수 없는 당신"

2023년 4월 9일, 2월 10km 완주 후 생애 첫 하프코스 김포한강마라톤에 출전하였다. 12km 지점 페이스 4분 40초.. 나의 좌측 무릎 바깥쪽에서 찌릿한 신호가 온다. 이때까지 느껴보지 못한 통증이 나의 레이스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통증으로 인해 절뚝거린 러닝자세로 피니쉬 라인을 들어온 순간 감격보다는 안도감이 나를 맞아 주었다. 그리고 걷는 것 조차 힘들었던 나는 집까지 어떻게 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계단은 물론 평지에서도 제대로 걷기가 어려운 상황 속에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장경인대 증후군(ITBS)”이라는 진단을 받고 충격파실로 터벅터벅 들어가는 순간 나 자신에게 한심하고 실망감이 몰려왔다. “물리치료사인 내가 내 몸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누구를 치료할 수 있을까?”..

Running Body [몸] 2025.06.06

스토아적 달리기 : 나답게 달린다

어느 날,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차오르며, 귀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자동차 소리가 함께 섞여 나를 자극한다. 공원으로 접어들어 달리는데 한 러너가 나를 지나쳐 달려간다. '왜 이렇게 힘들지?' '저 사람은 나보다 빠르네.' '나는 왜 이 정도밖에 못하지?' 머릿속에서 수많은 목소리들이 웅성대기 시작한다. 그때 문득, 고대 철학자 포시도니우스의 말이 떠올랐다.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통제하고 정복할 수 있는 영역은 바로 나 자신뿐이니까." 달리기는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운동이 아니다. 나와 나 사이의 싸움이며, 외부 환경과의 타협이고, 무엇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

달- : 움직이고 싶은 마음의 신호

인간 안의 생명력을 깨우는, 움직임의 본능이자 언어 ‘달리다’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1. 달음질하여 빨리 가다, 2.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 3. (마음이나 생각이) 기울어 쏠리다, 4. 일에 열중하다 등 여러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다. 어원적으로 보면, ‘달-’이라는 어근에 동작을 나타내는 접미사 ‘-리다’가 붙어 만들어진 말이다. 그 짧은 음절 하나, ‘달-’에는 움직임, 속도, 방향성, 갈망이 담겨 있다. 이 말은 단순히 육체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존재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구치는 내면의 충동이 응축된 살아 있는 언어다. ‘달-’은 무엇보다도 역동성을 품은 말이다. 움직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 머물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뻗어나가려는 에너지..

나에게 마라톤이란?

“이게 뭐지? 황영조, 이봉주 같은 사람들이나 하는 거 아니야?” 나에게 마라톤은 늘 텔레비전 속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스포츠에 큰 관심이 없던 나에게 마라톤은 그저 남들이 하는 일이었다.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러너들의 모습은“와, 저걸 왜 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괜히 숨이 막혔고, 그저 한숨부터 나오는 운동이었다.나는 내가 지구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끈기도 없고, 체력도 약한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달리기를 한다는 건 내 인생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마라톤? 내 사전에 없던 단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나도 뛰기 시작했다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온라인 판매자이자 유튜버로 살던 나는 오랜 앉은 자세와 무리한 작업으로 목과 허리를 혹사시켰다. 결국 내 몸은 ‘디스크’라는 만성 통증의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