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나의 목표는 단순했다.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는 것. 그 시간은 짧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당시의 나에겐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벅찬 도전이었다. 몇 분만 달려도 호흡은 금세 가빠지고, 다리는 무거워졌으며, 마음 깊은 곳에선 "여기서 멈춰도 되지 않을까?"라는 속삭임이 올라왔다.
그 30분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의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끝까지 달렸다는 사실은,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잠시라도 넘어서 보았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 작고 조용한 승리는 내 안의 어떤 가능성을 처음으로 비추는 불빛이 되었다.
두 달의 노력 끝에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된 나는, 이번에는 조금 더 멀리 나아가 보기로 했다. 10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리는 것. 이번에는 시간보다 거리가 중요했다. 목표는 ‘10킬로미터’라는 구체적인 수치로 설정되었고, 그 숫자는 나를 자극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리라는 숫자에 마음이 갇히기 시작했다. 단순히 완주하는 것을 넘어 얼마나 빠르게 달릴 수 있는지를 따지며, 속도를 재고 기록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달리는 나’가 아니라, ‘기록되는 나’를 증명하려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목표를 향한 달리기는 더 이상 자유롭지 않았다. 처음의 순수했던 마음은 희미해졌고, 달리기는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채찍이 되어 있었다. 몸은 종종 아팠고, 마음도 자주 꺾였다. ‘달리는 것’이 아니라 ‘측정된 나’만이 중요해졌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보다 얼마나 빠르게 도달했는지가 전부가 되었을 때, 나는 달리는 일에 점점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속도를 내려놓고 달려보았다. 더 멀리, 더 빠르게 가야 한다는 생각을 접고, 그저 오늘 하루 내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만 달리기로 했다. 그렇게 거리와 속도를 내려놓은 나는, 이번엔 1시간을 편하게 달려보자고 목표를 수정했다. 놀랍게도, 그 1시간은 그 어떤 10킬로미터보다도 가볍고 충만했다.
속도를 의식하지 않았기에 호흡은 안정됐고, 거리에서 자유로웠기에 생각은 깊어졌으며, 무언가를 해냈다는 감정보다 그저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1시간을 달린다는 것, 그것은 거리나 기록에 얽매이지 않는 일이었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내 안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일. 지속 가능성을 우선하는 성숙한 선택이었다.
돌이켜보면, 30분은 한계에 맞선 시간이었고, 10킬로미터는 목표에 집착했던 거리였으며, 1시간은 나 자신과 함께 흐르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보면 달리기의 목표는 바뀐 것이 아니라, 깊어진 것이다. 예전에는 외부의 목표를 향해 달렸다면, 지금은 내면의 평온을 향해 흐른다. 나는 이제 내 몸의 리듬을 듣고, 마음의 상태를 살피며, 달리기라는 작은 철학의 행위 속에 나를 맡긴다.
그리고 천천히, 확신하게 된다.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은 끝까지 달리는 내가 아니라,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나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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