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ning with Stories

모든 발걸음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달리고,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들을 기억합니다. 러너스로그는 그런 발걸음의 이야기를 함께 써내려가는 공간입니다.

『달리는 마음, 철학하는 몸』

Running Footage [장면]

최악의 컨디션에도 완주했다 – MBN 썬셋마라톤 영종 하프마라톤 도전기

kimcw0309 2025. 7. 4. 12:00

 

MBN이 주최한 영종도 썬셋마라톤 하프코스에 다녀왔습니다. 전날의 술자리 숙취, 비바람, 긴장 속에서도 끝까지 완주했죠.  

“최악의 컨디션, 최고의 완주!” 영상과 함께 그 생생한 하루를 나눠봅니다.

 

▶ 영상 풀버전은 유튜브에서 확인하세요!  

https://youtu.be/CSJdFZEwCZU?si=qGaQTNanzcf0pkwo

 

 

 

#01 술병→링거→짬뽕→비바람… 진짜 이래도 뛸 수 있나요?

 

전날 술병, 그리고 시체 상태로 도착한 대회장 하프마라톤을 하루 앞둔 저녁, 현아가 수원까지 온다고 하기에 "그냥 우리 집에서 자고 같이 가자" 제안했다. 가족들과 간단히 외식을 했고, 소맥 한두 잔 정도만 마시려 했는데… 결국 2차까지 가는 바람에 기억조차 없는 밤이 되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속은 뒤집어지고 머리는 깨질 듯 아팠다. "오늘 대회인데…" 라는 생각뿐이었다. 급히 병원으로 가서 링거를 맞고, 약국에서 약도 사 먹고, 뜨거운 샤워까지 했지만… 회복은커녕 멍한 상태 그대로 시간이 흘렀다. 12시에 만나기로 한 이상한 형을 향해 출발했지만 이미 늦었고, 결국 술 마신 걸 고백하게 됐다. "형… 술병 났어요…" 형은 웃으며 넘겼지만, 난 알았다. 오늘, 무조건 혼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걸. 컨디션은 바닥이었고, 정신은 반쯤 나간 상태. 그런데도 나는 출발 준비를 마쳤다. 왜냐하면... 이미 함께 달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02 출발선 앞, 현실은 숙취와 폭우

 

대회 이름은 썬셋 마라톤인데, 태양은커녕 비가 쏟아지고 바람은 미친 듯이 불었다.힘든 대회가 될 것 같은 불길함이 스쳤다.

며칠 전, 워크브레이크 영상에서 "10km를 1시간 안에 들어오면 가민 시계를 선물하겠다"고 했었는데 이상한 형이 술자리에서 갑자기 말을 바꿨다. "야~ 하프 2시간 20분도 사줘~~!"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말해버리니까, 나도 어쩔 수 없이 OK 해버렸다. 술이 문제였다, 진짜. 그 얘기를 다시 현아에게 상기시켰다. 목표를 주면 조금 더 버티고 버티겠지 싶어서. 출발선에 섰다. 몸은 무겁고 마음은 불안했지만, 그래도 출발했다. 비바람을 뚫고, 그렇게 우리의 레이스가 시작됐다.


 

#03 걷는 건 패배가 아니다, 준비다

 

이상한 형이 워크브레이크 훈련을 제안했습니다. 한마디로 걷는 것을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활용하자는 건데 처음엔 솔직히...

달리면서 걷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마라톤이면 뛰어야지, 걷는 건 패배다!’ 그런데 현아와 함께 몇 번을 훈련하다 보니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걷는 건 패배가 아니더라고요. 걷는 건 준비였어요. 숨을 고르고, 심장 박동을 가라앉히고, 다시 힘을 모으는 시간. 워크브레이크는 포기가 아니라, 계속 가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특히 오늘같이 비바람 몰아치고, 컨디션도 썩 안 좋을 때는 그 짧은 걷기가 진짜, 생명줄이었어요. 걷는 동안 “괜찮아, 아직 갈 수 있어.” 이렇게 스스로 다독이는 시간도 생겼고요. 결국 우리는, 걷기 덕분에 더 멀리, 더 오래, 더 즐겁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 걸어도 괜찮습니다. 쉬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함께 계속 나아가는 거니까요.


 

#04 가민은 놓쳤지만, 우린 끝까지 달렸다

 

가민 시계는 놓쳤지만, 더 중요한 걸 얻었다. 몸은 생각보다 잘 버텼고, 가민 시계도 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현아가 결국 복통으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알았다. “가민은 안녕이다.” 하지만 솔직히, 마음은 가벼워졌다. 조금 더 여유 있게, 편하게 달릴 수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걷고, 멈추고, 다시 달리는 것. 그게 워크브레이크였다. 기록은 2시간 23분. 하지만 진짜 얻은 건 “함께 끝까지 가는 달리기.”

 

 

#05 기록보다 남는 건 기억이었다

 

함께였기에 완주할 수 있었다. 비바람 속, 술병 속, 컨디션은 바닥이었고, 마음도 흔들렸다. 그런데도 결국 우리는 완주했다.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더 빨리, 더 멋지게 뛰었는지는 상관없었다. 끝까지 함께 가는 것, 그게 오늘의 진짜 목표였다.

걷는 건 패배가 아니었다. 숨을 고르고, 다시 힘을 내는 시간이었다. 멈추는 건 무너지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을 정비하는 용기였다.

그날 우리는 비틀거리고, 멈추고, 다시 달리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완벽하진 않아도 불완전한 상태 그대로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간 그 하루는 기록보다 오래 남을 ‘기억’이 되었다. 진심으로, 추웠다. 그래도 웃으며 완주했다.

 

 

 

 

마무리..

 

달리다 보면

멈추고 싶을 때가 꼭 찾아오죠.

그럴 땐 그냥 잠깐 쉬어도 됩니다.

쉬어도, 결국 우리는 또 달릴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