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ning with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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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마음, 철학하는 몸』

Running Mind [마음]

달- : 움직이고 싶은 마음의 신호

춤추는별 2025. 6. 6. 08:35

인간 안의 생명력을 깨우는, 움직임의 본능이자 언어

 

달리다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1. 달음질하여 빨리 가다, 2.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 3. (마음이나 생각이) 기울어 쏠리다, 4. 일에 열중하다 등 여러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다. 어원적으로 보면, ‘-’이라는 어근에 동작을 나타내는 접미사 ‘-리다가 붙어 만들어진 말이다. 그 짧은 음절 하나, ‘-’에는 움직임, 속도, 방향성, 갈망이 담겨 있다.

 

이 말은 단순히 육체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존재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구치는 내면의 충동이 응축된 살아 있는 언어다. ‘-’은 무엇보다도 역동성을 품은 말이다. 움직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 머물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뻗어나가려는 에너지. ‘달리다는 바로 그 에너지가 몸을 통해 세상으로 분출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 역동성은 언제나 자유롭게 발현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것을 미덕으로 배우고, ‘급한 것은 천하다는 질서를 내면화하며 자라왔다. 내면의 역동성을 감당하지 못했던 나는 어릴 적,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빠르게 움직이며 활동량이 많았다. 그랬던 나는 부산스럽다’, ‘자발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자발없다가볍고, 참을성이 없다라는 뜻이다. 그렇게 내 안의 역동성은 주체할 수 없는 결함처럼 억눌리고 말았다.

 

빠르게 움직이고 싶은 욕망은 조급함이라는 이름으로 억눌렸고, 갈망은 참을성 없음으로 평가절하되었다. 조급함은 흔히 부정적으로 읽힌다. 성숙하지 못한 자의 초조함, 경솔한 자의 불안, 참을 줄 모르는 자의 어리석음. 조급한 자는, 너무 가볍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왜 나는 조급하다는 이유로, 그토록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야만 했는가? 나는 단지 움직이고 싶었다. 어딘가로 향하고 싶었고, 무언가를 만나고 싶었으며, 지금 이 자리에 가만히 머무는 것이 도무지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급함은 곧, 움직임을 향한 내면의 명령이었다.

 

우리는 단지 누르고 참는 것을 미덕으로 배웠을 뿐, 그 조급한 마음을 이해받을 언어조차 갖지 못했다. 예로부터 양반은 뛰지 않았고, 울음을 삼키는 것이 인내였으며, 무엇이든 욕망은 억제되어야 했다. 그렇게 나의 조급함은, 곧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달리다는 단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개체의 욕망의 문제다. 달리고 싶었던 마음은 사회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움직이고 싶은 충동조차 억눌리는 것은 인간을 가장 비인간답게 만드는 억압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억눌린 생동의 자리에서, ‘-’이라는 말은 다시 시작된다. 어린아이가 이유 없이 달음질하듯, 어른이 울음을 삼킨 채 길을 나서듯, 달리기란 억눌린 본능을 해방하는 몸의 선언이다.

 

달리다라는 말은 언제나 어디론가를 전제한다. 무엇을 향해, 누구를 향해, 우리는 달린다-’은 방향 없는 속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 움직임의 심층에는 도달하고 싶은 어떤 대상혹은 벗어나고 싶은 어떤 그림자가 존재한다. 그래서 -’은 열망의 언어다. 말할 수 없는 아픔을 품고 달리는 이, 또 다른 나를 만나기 위해 달리는 이, 수많은 생각으로부터 생각 없음의 상태로 달리는 이, 모두의 발밑에서 -’이라는 말은 그들을 다시, 달리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달리기의 -’은 우리 안의 가장 원초적인 언어다. 감춰졌던 욕망, 마주하지 못했던 바람, 말로 꺼낼 수 없는 아픔, 다만 달려야만 가까워질 수 있는, 또 다른 나. 달리는 이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몸으로 기도하고, 심장으로 주장하며, 다리에 실린 언어로 자신을 고백한다. 그러므로 -’이라는 소리에는 갈망이 숨겨져 있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나 있었던, 한 번쯤은 닿고 싶었던 그 어딘가를 향해 나는 지금도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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